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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행기에서 한 생각

내가 진짜 원하는 것, 놓아주려는 짝사랑, 그리고 사랑이 마법 같은 이유

2026년 10월 18일 · 다른 언어: english

밤새 한숨도 못 자고 탄 비행기에서, 반쯤 깬 채로 메모장에 쓴 글이야. 조금 다듬긴 했는데 거의 그때 친 그대로야.

그래서 목표가 뭔데

목표가 대체 뭔지 계속 스스로한테 물었어. 학교, 일, 전부 다. 그리고 내가 도착한 답은 민망할 정도로 단순했어. 행복하고 싶다.

그러고 바로 "감정적으로 행복하려면 뭘 해야 하지?"라고 적었어. 너무 나다워. 뭐든 할 일 목록으로 만들어 버려. 근데 행복은 프로젝트처럼 굴러가지 않아. 오히려 나를 계속 채점하는 그 부분이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야.

그러니까 더 나은 질문은 아마 이거야. 어떻게 하면 나를 덜 채점할까.

나로 사는 것

오랫동안 내가 게이라는 것에 붙잡혀 있었어. 진짜 그런 건지, 한때인 건지,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. 작년에 커밍아웃했고, 이제 더는 의심 안 해. 나는 게이야. 그건 정리됐고, 이제 넘어가도 돼.

돌아보면 그 시간의 꽤 많은 부분이 좀 보여 주기식이었어.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으면 증명하려고 과하게 하게 되거든. 남한테만이 아니라 나한테도. 아직 진짜인지 확인하는 중이라서, 게이라는 게 내 성격 전부가 돼 버렸어. 그 질문이 잠잠해지니까 다른 질문이 생겼어. 좋아, 그럼 나는 진짜 뭘 좋아하지?

나는 늘 취향이 없다고 느꼈어. 친구들은 좋아하는 음악이 있고, 스타일이 있고, 자기 무리가 있어. 나는 그냥 "다 괜찮아"뿐이야. "그냥 내 맘대로 살아야지" 하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는데, 그것도 좀 과잉 반응 같았어. 뭔가에 반발하면서 사는 것도 결국 그게 나를 정하게 두는 거니까.

취향은 그것보다 작은 거라고 생각해. 이 노래 좋다. 이 셔츠는 나 아니다. 이 카페 느낌 좋다. 작은 걸 계속 고르다 보면 어느 날 그게 쌓여서 누군가가 돼. 나는 그냥 내 걸 한 번도 적어 둔 적이 없었어.

짝사랑

한동안 마음이 걸려 있는 남자가 있어. 친구야.

왜 좋은지 적어 봤더니 목록이 이랬어.

  •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안다. 자기가 누군지 자리 잡은 사람 같아.
  • 내가 힘들어하는 걸 잘한다. 그 사람 옆에 있으면 나만 한 발 늦은 느낌이 들어.
  • 사람들이 좋아한다. 나는 딱히 베프가 없어. 그 사람은 사람이 많은 것 같아. (여기엔 물음표를 달았어. 추측이란 걸 알았던 것 같아.)

그리고 이렇게 적었어. "그래서 그 사람 옆에 있으면 내가 별로로 보여."

이걸 알아채는 데 좀 걸렸어. 그 세 가지가 정확히 나한테 없다고 느끼는 세 가지야. 그러니까 끌리는 것 중 일부는 그 사람이고, 큰 부분은 그 사람이 상징하는 거야. 동경이랑 끌림이랑 질투가 한 덩어리로 뭉쳐 있어.

실제로 사귀는 걸 상상해 봤어. 편안하지 않았어. 불안했고, 그 위에 엄청난 짜릿함이 얹혀 있었어. 그 짜릿함이 많은 걸 말해 줘. "이 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다"보다는 "저런 사람이 나를 골라 주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겠지"에 가까워. 뭘 쌓기엔 좋은 바탕이 아니고, 잠깐만 가는 종류의 감정이야. 짜릿함 다음엔 잃을까 봐 무서운 게 와.

사실 어디로 간 적도 없어. 가까웠고, 한동안 좀 애매했고, 그 뒤로 둘 다 다시 꺼내지 않았어. 애매한 게 제일 최악이야. 내 머리는 메시지 하나하나를 계속 해독하려고 했어.

그래서 이렇게 정했어. 그냥 흐려지게 두기로. 좋은 감정은 가져가고 나쁜 건 두고 가기. 친구로는 남기. 그 우정은 진짜고 지킬 만하니까. 하고 싶어도 스킨십은 줄이기. 나한텐 그게 그냥 친구끼리의 터치가 아니라 늘 질문이었으니까. 그리고 억지로 잊으려고 하지 않기. 잊으려고 애쓰는 건 결국 더 생각하는 거니까.

비교가 나를 성장시킨다고도 스스로한테 말했어. 그건 반만 맞아. 비교는 내가 하는 행동으로 바뀔 때 성장이 돼. "그 사람이 자기 걸 아끼는 만큼, 나도 아낄 걸 하나 찾아보자" 같은 거. 기분이 가라앉은 날에는 그냥 나를 깎아내리는 자일 뿐이야.

사랑은 좀 마법 같아

쓰면서 제일 좋았던 부분은 이거야.

누군가를 좋아하는데, 그 사람도 같은 때에 나를 좋아한다는 건 우연 위에 우연이 쌓인 거야. 게이로 살면 그 확률이 더 작게 느껴져. 일단 상대가 남자를 좋아해야 하고, 그다음에 나를 좋아해야 하고, 그것도 같은 때에. 진짜 일어나기 힘든 일이야. 마법 같아.

그리고 그게 실제로 일어나. 내 인생에서도 일어나. 내가 정말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는 건, 솔직히 세상에서 제일 마법 같은 일 중 하나야.

요즘 알아채고 있는 건, 그 마법이 꼭 극적으로 생길 필요는 없다는 거야. 내 삶에 그냥 편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어. 서로 보고 싶어 하고, 서로 챙기고, 그 사람 옆에선 내가 작게 느껴지지 않아. 짜릿함이 없어서 하마터면 세지도 않을 뻔했어. 근데 그것도 우연이 엄청 많이 맞아떨어진 거야. 아직 안 일어난 마법만 말고, 이미 와 있는 마법도 세어 봐야 할 것 같아.

나아지기

메모의 마지막 부분은 건강 얘기였어. "우울증 낫기"라고 적었다가 고쳤어. 사실은 양극성이야.

적은 계획은 짧았어.

  • 의사한테 다 말하기. 최대한 자세하고 사실대로.
  • 약 제대로 먹기.
  • 슬픈 생각 하지 않기.

앞의 두 개는 지금도 맞다고 생각해. 세 번째는 바꾸고 싶어. 슬픈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 건 안 돼. 그보다 나은 건 알아채는 거야. 기분이 가라앉은 날 머릿속에서 하는 말은 대부분 진실이 아니라 기분이 하는 말이야. 비교는 더 시끄러워지고, 나는 더 작아 보여. 그걸 잡아내서 "아, 또 기분이 이러는구나" 하고 말할 수 있으면 힘이 좀 빠져. 그리고 적어 두면 의사도 진짜로 다룰 게 생기고.

그래서 목록은 이래. 행복하기. 나를 덜 채점하기. 작은 것들에서 취향 찾기. 짝사랑은 천천히 놓아주기. 이미 와 있는 마법 세어 보기. 약 먹기.

몇 달 뒤에 다시 확인해 볼게.